신경림 '농무'부터 반세기, 창비시선 500호 맞아…"한국시의 저력"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시선집의 하나인 창비시선이 500호를 맞았다. 1975년 창비시선 첫 출간 이후 약 50...

2024-03-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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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출간"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신구 조합이 가장 탄탄한 시선집" 창비시선 500 기념시선집·특별시선집 기자간담회 창비시선 500 기념시선집·특별시선집 기자간담회

진연수 기자 =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설가온에서 열린 '창비시선 500 기념시선집·특별시선집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김사인 시인이 발언하고 있다. 2024.3.27

김용래 기자 =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시선집의 하나인 창비시선이 500호를 맞았다. 1975년 창비시선 첫 출간 이후 약 50년 만이다.

출판사 창비는 창비시선 500번 기념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과 특별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을 함께 펴냈다고 27일 밝혔다.

문학과지성 시인선과 함께 국내 문단의 양대 시인선으로 꼽히는 창비시선은 1975년 3월 초판이 나온 신경림의 시집 '농무'를 시작으로 49년 만에 500번을 맞았다.

이번에 출간된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은 안희연, 황인찬 시인이 창비시선의 401번(김용택 '울고 들어온 너에게)부터 499번(한재범 '웃긴 게 뭔지 아세요')까지 각 시집에서 한 편씩을 뽑아 엮은 선집이다.

김용택의 '오래 한 생각'을 비롯해, 박연준 '고요한 싸움', 백무산 '정지의 힘', 정호승 '집을 떠나며', 정끝별 '모방하는 모과', 한재범 '다회용' 등 90편의 시가 수록됐다.

계간 '창작과비평'의 백지연 부주간(문학평론가)은 "창비시선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신구 조합이 가장 탄탄한 시선집"이라며 "401번이 나온 2010년대 중반은 한국 사회의 여러 격변과 함께 문학·출판·대중문화계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형성됐던 시기로, 서정의 진화를 꾀하는 새로운 시적 방법들이 창비시선을 풍성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함께 선보이는 특별시선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은 시인들이 즐겨 읽는 시들을 손수 뽑아 수록한 선집이다.

추천인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의 저자들인 창비시선 400번대의 시인들이다. 이들은 창비시선 전체 작품을 추천 대상작으로 해 자신이 아끼고 애송하는 시를 추천했다.

김수영 시인이 "나는 한때 사랑의 시들이 씌어진 책을 가지고 있었지요. 모서리가 나들나들 닳은 옛날 책이지요. 읽는 순간 봄눈처럼 녹아버리는, 아름다운 구절들로 가득 차 있는 아주 작은 책이었지요"라고 적은 '책'을 시작으로, 신경림 '목계장터',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김선우 '어라연', 진은영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등 창비시선에 포함된 73편의 시가 담겼다.

[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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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선집에는 창비시선 5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제목부터가 창비시선의 시작을 알린 신경림 시집 '농무'의 수록작 '그 여름'의 한 대목이다.

송종원 '창작과비평' 편집위원(문학평론가)은 "창비시선이 500권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살아 있는 역사를 접한 생생한 기록이 500권의 시 언어를 통해 우리 앞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는 말"이라면서 이는 "한국시의 저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땅에서 당당하고 떳떳한 삶을 갈망해온 존재들의 힘을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창비시선 발간에 초창기부터 오랜 기간 함께해온 문학평론가 겸 시인인 김사인 전 한국문학번역원장도 함께 자리했다.

창비시선 1번 신경림 '농무' 창비시선 1번 신경림 '농무'

[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 시인은 창비시선이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해방 이후 좌우 대립과 한국전쟁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우리 문학사에서 주눅 들고 실종되다시피했던 역사적·사회적 현실에 대한 인식, 탐구, 발언을 복권하고자 한 것이 창비시선의 큰 공로"라고 짚었다.

그는 "1960년대까지는 전원적·목가적 유파 아니면 현대시를 지향하며 평범한 사람들에게 매우 난해하게 각인된 시들이 대체적 흐름이었고, 유교에 주눅 들어 현실이나 역사에 관한 발언도 실종되다시피 했었다"며 "그런 가운데 평범한 이들의 삶에 근거한 시적 감수성의 복원을 시도했던 것이 창비시선의 뜻이었고 큰 흐름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창비는 창비시선 500번 맞이를 기념해 다양한 문학 행사를 준비 중이다.

내달 19~28일 서울 마포구 '디콜라보'에서 젊은 시인들이 일일 점원으로 참여하는 팝업스토어를 열고, 27일엔 같은 장소에서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을 엮은 안희연·황인찬 시인의 북토크도 마련한다. 지역의 시 독자들을 위해 전국 순회 북토크도 기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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