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다에 모든 것을 잃을 지라도…국립극단 연극 '만선'

"대체 뭣이 만선이여! 누구를 위한 만선이여!"

2023-03-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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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세의 사실주의 대표 명작…명동예술극장서 내달 9일까지김명수·정경순·강민지 등 호연…몰아치는 폭풍우도 실감나 연극 '만선' 연극 '만선'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용래 기자 = "대체 뭣이 만선이여! 누구를 위한 만선이여!"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만선'은 운명의 아이러니에 관한 이야기다.

남해의 한 작은 마을. 어부 '곰치'에게는 자기 가족에게 대물림돼 온 지독한 가난을 벗어날 길이 '만선'(滿船)뿐이다. 거친 바다에 맞서 싸워 이겨서 부서(보구치)떼를 안고 돌아오겠다는 '곰치'의 집착은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가족을 점차 파멸의 구렁으로 몰아간다. 딸 '슬슬이'는 아버지와 함께 바다로 나갔던 오빠와 연인이 모두 죽은 사실을 알고 만선이 대체 무엇이냐며 절규한다.

이달 16일부터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만선'은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천승세(1939~2020)의 대표작이다.

작가는 희곡은 '만선'을 포함해 세 편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대표작이 '만선'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다. 천승세는 이 작품을 25세 때인 1963년에 써 이듬해 국립극단 현상공모에 당선됐다. 초연은 1964년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였다.

운명과 자연, 자본의 횡포에 맞섰던 곰치 일가의 위대하면서도 비극적인 여정을 다룬 '만선'은 이후 60년 가까이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사랑받아왔다.

거친 자연에 맞서는 남자 '곰치'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만선'은 한국판 '노인과 바다'라 할 만도 하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소설이 희망에 관한 우화에 가깝다면 '만선'은 사실주의에 기반한 처절한 비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연극 '만선' 연극 '만선'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만선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곰치는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처럼 대자연에 맞서 싸우는 영웅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집착해 가족이 파멸로 끌려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무력한 서민이기도 하다.

이번 '만선'은 국립극단의 창단 70주년 버전으로, 극작가 윤미현이 윤색하고 심재찬이 연출을 맡았다. 2021년 초연에 이은 재연으로 중견배우 김명수와 정경순이 주역 '곰치'와 '구포댁'을 다시 맡아 호연을 보여주고 있다.

'슬슬이' 역의 강민지를 비롯해 도삼, 연철 등 젊은 등장인물들의 연령대를 지난 캐스팅보다 더 낮춰서 실제 그 나이에 더 맞게 배역을 가져간 것이 전과는 조금 달라진 부분이다.

곰치는 거의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도 고집을 꺾지 않고 아내 구포댁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물을 손에서 놓는 날에는 차라리 배를 갈르고 말 것이여"

원작에 없는 이 부분은 윤색을 맡은 윤미현 작가와 심재찬 연출이 상의 끝에 곰치의 명분을 더 살려주기 위해 만들어 넣은 장면이라고 한다.

곰치 일가의 비극을 상징하는 듯한 가파른 기울기의 무대 위로 폭풍우가 몰아칠 때 객석의 관객들은 실제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의 냉기에 소스라치게 된다. 이 차디찬 한기는 곰치네 가족을 휩쓴 가혹한 운명의 온도일까.

목포 출신인 원작자가 펼쳐놓은 60년대 호남 토속어의 향연도 낯설지만 흥미롭다.

공연은 4월 9일까지.

[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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